
한 평범한 개인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때로 한 국가의 굴곡진 현대사를 관통하며, 나아가 우주적 계시와 시대적 통찰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자서전 『제1권 에덴동산의 법 하마알 - 하마알 구씨 글씨 솜씨』(전자책 https://gpr.vc/koo1)를 출간한 구삼열(具三烈) 작가(77)의 삶이 바로 그러하다. 외항선 통신장 출신인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냈다. 여섯 차례의 안과 수술 실패로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에서도 돋보기와 스마트폰 사진 확대 기능에 의지해 써 내려간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을 넘어선다. 한글의 위대함에 찬사를 보내며 세종대왕을 '공저자'로 칭한 이 책에는 병든 현시대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와 한민족의 찬란한 미래를 예견하는 묵시록적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구 작가가 인생의 황혼녘에 힘겹게 펜을 든 가장 큰 이유는 부친인 고(故) 구피득(具彼得, 1912~1983) 목사의 묻힌 치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함이다. 포털 검색창에 열대어 번식을 뜻하는 ‘구피 득치(새끼 얻기)’는 넘쳐나지만, 평생을 신앙과 애국에 바친 ‘구피득 씨’의 숭고한 행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그를 움직였다. 일제강점기 무폭력·무저항으로 항일 투쟁과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이끌며 투옥을 견뎌낸 숨은 독립운동가였던 구피득 목사. 해방 후에는 전남방직 공장 기숙사에서 시작된 예배를 오늘날의 광주 서림교회로 키운 산업 선교의 선구자였다. 10여 년간 단 한 건의 노동쟁의도 없는 모범적인 일터를 일궈낸 인물이며, 특히 6·25 전쟁 당시에는 인민군의 즉결처분 위기 속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한 뒤 남로당에 연루돼 사형을 기다리던 공장 직원 50여 명을 신원 보증으로 구명해낸 의인이었다.
그 놀라운 행적의 뿌리는 구한말 궁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친의 고모할머니는 경복궁에서 명성황후를 수종 들던 궁녀였다. 어느 날 ‘평화, 놀라운 평화’란 찬송에 발걸음을 멈춘 뒤 70 평생의 불교 공적 없이도 참된 평화를 발견하고 즉시 기독교로 개종, 75마일(약 120km)의 빙판길을 걸어 광주 사경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던 분이다. 미국인 선교사 애너벨 메이저 니스벳(Anabel Major Nisbet)은 저서 『호남 선교 초기 역사』 ‘탈곡기’ 편에서 이 백발의 노모를 “이스라엘의 어머니 같다”고 적었다. 이 가풍 속에서 대지주였던 조부 구경모 장로는 1919년 3·1운동 당시 자기가 만든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선 강직한 애국자였고, 1942년 신사참배 거부 대표로 50여 명과 함께 체포돼 구금된 인물이기도 했다. “예수의 사도 베드로” 란 뜻의 한자 ‘구피득(具彼得)’은 강인한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주겠다는 조부의 의지가 담긴 이름이었다.
모든 재산을 환원하고 청빈한 목회자의 길을 걸었던 부친에 대해 저자는 단호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친일파들은 떵떵거리며 사는데, 굳건한 신앙으로 항일 투쟁을 한 분들의 흔적은 서류가 파기되었다는 이유로 외면받고 있다.” 이 한 편의 책이 애타게 촉구하는 것은 결국 보훈 심사 규정의 완화다. 같은 항일 투쟁에 동참했던 ‘전라도 성직자 13인’ 가운데 김용수·조용택 전도사 등 일부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으나, 정작 ‘하·마·알(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도록 하라·세상 영광 바라지 마라·이것이 하늘의 뜻임을 알라)’의 계시를 가슴에 새긴 채 평생을 청빈하게 살아온 구피득 목사는 76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 공식 기록에 등재되지 못하고 있다.
1942년 8월 10일, 광주지방법원의 판결문은 청년 구피득 전도사를 3년여의 옥고로 내몰았다. 전라도 성직자 13인은 일제의 압제 속에서 무등산 원효사 등에서 ‘하기 성경 연구 수양 집회’란 위장 아래 산상 예배를 드렸다. 신사참배 배격, 일본 상품 불매, 애국혼 함양을 외치던 이 비밀 모임은 발각돼 미제 스파이 혐의로 몰렸다. 강제 창씨개명 ‘스기타 피득’의 치욕을 시작으로 무릎에 몽둥이를 끼워 짓밟고, 가죽 조끼를 입혀 물을 부어 가슴을 조이는 살인적 고문이 이어졌다. 거꾸로 매달아 코에 고춧가루 물을 부으며 범을 자행한 일제 고문, 살아 돌아왔을 때 그는 평생 뇌동맥 확장증으로 턱 밑에 어린아이 주먹만 한 혹을 짊어졌고 앞니가 어금니처럼 마모될 정도로 이를 악물어야 했다.
실신 직전 하늘에서 큰 두루마리가 내려오는 환상(에스겔 3:1)을 본 그는 영적 계시로 ‘하·마·알’(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도록 하라·세상 영광 바라지 마라·이것이 하늘의 뜻임을 알라)을 가슴에 새겼다. 살아서 돌아온 뒤에도 10년간 몸담은 회사의 퇴직금과 전 재산을 환원하고 세 아들을 데리고 대구 신학교로 떠나며 “세상 영광 바라지 마라”라는 계시를 문자 그대로 옮겨간 것이다. 훗날 숭실대 초대 총장이 되는 김형남(金瀅楠, 1905~1991) 사장이 교목(校牧)으로 청빙하며 만류했으나 구 장로는 끝내 거부했다. 화당 그리스도의 교회(해남)에서는 진흙탕이 되는 길을 직접 돌산을 깨 고쳤고, 학동 양로원 내 빈민촌 교회에서는 강냉이 가루로 연명하면서도 헌금이 몇천 원에 불과한 교회를 지켰다. 마당의 우물은 그가 사흘 밤낮을 파낸 것. 미국인 선교사 존 V. 타마자(John V. Talmage)의 옥중 일기 『한국 땅에서 예수의 종이 된 사람들』에는 20개월을 함께한 감방 동기 구피득의 기록이 남아 전해진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한 뒤 구피득 전도사는 복음을 들고 전남방직 공장 기숙사로 달려갔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하신 말씀처럼 기숙사 근로자들을 모아 신우회를 조직했고 미군정 시절 공장 관리인 및 훗날 일신방직의 실질 창업주가 되는 김형남 사장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1948년 공식 사료상 첫 예배가 시작된 이 모임은 ‘전방교회(全紡敎會·전남방교회)’를 거쳐 오늘의 광주 서림교회(설립 등기 1953)로 자랐고 저자에 따르면 그 신앙 공동체는 10여 년간 단 한 건의 노동쟁의도 없는 모범적인 일터로 일궈졌다. 기숙사 사감兼(겸) 전도사로 섬기며 구피득과 김형남 두 사람은 일제강점기부터 여공의 퇴근 시 절도 방지 명목으로 행해지던 가혹한 ‘검수(軋袖·몸수색)’를 완전히 폐지하기로 결의한다. 기독 자매들이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는다’며 양심 회복 운동을 펼친 끝에 1948년경 ‘검수 완박(몸수색 완전 폐지)’이 실현됐다.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한 이 양심 선언은 공장 안팎으로 큰 칭송을 받았고, 교인 수를 폭발적으로 늘려 55평 예배당 봉헌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나란히 제1대 장로로 장립됐다. 이 사건은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기독교 양심 선언’이라 불릴 만한 파격적 조처였으며 후에 작가가 자서전에서 “검수 완박은 한국 산업 선교의 교과서가 될 사례”라고 적을 정도로 자부하는 일대기다.
그러나 6·25 전쟁이 발발하며 평화는 산산조각 났다. 부산으로 피난하던 부친이 텅 빈 광주에 남긴 가족, 출산 직후 산후조리 중이던 아내 정겸순 권사와 갓 태어난 삼남 삼열 등 4남매는 인민군에 맞서 교회를 지키려던 어머니의 고문을 지켜보아야 했다. 폭격 속에서도 전방교회 예배당과 병원, 사택만은 유리창 한 장 깨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 공장 복구 선발대 17명과 함께 귀환하던 길 1950년 9월, 담양 금성면 부근에서 인민군 패잔병에게 포로로 잡힌 구 장로. ‘예수쟁이’이란 이유로 즉결 인민재판에서 전원 사형 선고를 받았다. 야산 사형장으로 끌려가며 그는 동료들을 격려했다. “비굴하게 구걸하지 말고 예수 이름으로 떳떳하게 죽읍시다.” ‘세상에는 눈물뿐이요 고통만 닥쳐와도…’ 찬송이 울리는 가운데 총성이 울렸다. 동료들이 쓰러지고 확인 사살이 이어졌다. 인민군 군화가 구 장로의 머리맡에 닿았고 총구가 불을 뿜었다. ‘퍽!’ 소리와 함께 피바다가 되었으나 두 발의 탄두는 기적적으로 살짝 비튼 머리카락만 스치고 땅에 박혔다. 뼈가 으스러지는 개머리판 구타를 견디며 죽은 척하던 중 ‘유엔군 흑인 부대가 온다!’는 소식에 인민군이 도주했고 야간 포복으로 9개의 강을 건너 극적으로 생환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고문 후유증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1951년 큰딸과 셋째 아들은 충격과 병마로 연이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는 복수 대신 사랑을 택했다. 전쟁 중 식량 배급 사기에 연루돼 즉결 처분 위기에 처한 전남방직 직원 50여 명을 살리기 위해 머리의 총상 치료를 받으면서도 경찰서장과 사령관을 찾아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신원 보증을 섰다. 일선에서 목숨을 건 이 거대한 용기와 사랑은 부친의 또 하나의 거목 같은 면모다.
책에서 가장 신비롭고 예언적인 대목은 1984년 4월 22일 딸의 첫 돌,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페르시아만으로 항해하는 화물선 ‘피닉스 에이스(Phoenix Ace)’호에서 저자가 겪은 영적 체험이다. 새벽 여명 속 시공간을 초월해 나타난 기이한 별빛이 ‘3634’ 란 숫자로 다가왔다가 선체를 통과한 뒤 ‘4363’이란 숫자로 멀어지는 현상을 목격했다. 저자는 이를 ‘육(6)신의 욕망을 삼(3)가하고(3634) 세상 사(4)랑을 마(3)하라(4363)’는 하늘의 뜻으로 새겼다. 놀라운 일치는 이 숫자가 수십 년 뒤 현실의 물리적 지표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2011년과 2019년 충북 옥천 지진의 진앙지가 정확히 ‘북위 36.34도’(북위 36.34°)였고, 2023년 일본 홋카이도에서 관측된 기이한 붉은 오로라의 발생 위치는 ‘북위 43.63도’(북위 43.63°)였다. 저자는 3634를 뒤집은 ‘4363’이 단기 4363년 곧 서기 2030년을 가리킨다고 풀이하며, 이때 대한민국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불사조(피닉스 에이스)로 비상할 것이라 원대한 예언을 제시한다. 2030년 대한민국은 한국인의 길로 나아가는 ‘코로나(Korona)’의 저력으로 굳건히 일어설 것이라 역설하며 자신을 ‘고래(苦來 → 길이 오다)’에 비유하며 바다 같은 우주적 풍파 속에서 한국이 세계의 불사조로 비상할 신적 탁월함을 몸소 보여줄 것이라 확신한다.
거시적 담론 이면에는 십자가 같은 개인의 비극이 자리하고 있다. 1980년 5월 광주 전남도청 인근 중심부에서 생업을 이어가던 저자 부부는 5·18의 참상을 한복판에서 겪어야 했다. 총탄이 빗발치는 공포 속에서 그해 7월 만삭의 아내가 첫아이를 출산했으나 ‘빛고을’이 아닌 ‘핏고을’ 광주에서의 충격 때문인지 아이는 불과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여전히 5·18 피해자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한(恨)을 그는 자작곡 〈광주를 신나게〉의 노랫말로 승화시켰다. ‘광주의 거리를 신나게 걸어라 / 총 대신 노래로 채워라’ 같은 가사가 5·18의 트라우마를 대중가요 형태로 풀어낸 것은 그 역시 ‘잊힌 역사’의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육신의 고통도 끊이지 않았다. 백내장 수술을 시작으로 렌즈 도수 오류, 라섹 등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6차례의 안과 수술 끝에 우안 시력을 거의 상실했다. 두 차례나 ‘유체이탈(out-of-body experience)’ 체험을 통해 수술을 만류하는 영적 경고를 받았음에도 의술에 의존했던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저자는 초인적인 긍정력으로 답한다. “육신의 눈은 어두워졌으나 눈을 감으면 영혼의 세계가 너무도 맑고 밝게 보인다.” 6번의 안과 수술 끝에 우안이 거의 실명 상태로 남았다는 작고 박힌 기록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긋는 77세 노신사의 의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 작가는 스스로를 ‘하버드(할아버지가 방에 드나든) 출신’이자 애국 조직 ‘NASA(나라를 사랑하는)’의 요원이라 칭하며 특유의 언어유희로 병든 사회를 꼬집는다. 한국에 닥친 ‘코로나(Korona)’를 ‘Korea Road Narae(한국인의 길로 나래를 펴다)’로, ‘코미디(Komidy)’를 ‘Korea Mission Display(한국 사명 전시)’로, 아리랑을 하나님(엘)과 함께하는 ‘엘리랑’으로 재해석하는 재치가 빛난다. 반면 덕수궁에서 폭탄주를 돌려 마시며 난장판을 벌인 정치권의 형태를 ‘독수(毒手)’와 ‘독소(毒素)’에 빗대며 곪은 것을 도려내는 진정한 ‘제명(除名)과 재명(再命)’을 촉구한다. ‘빼앗고 속이는 옹고집 집단은 ‘무정란’에 불과하다’며 ‘생명의 유정란’으로 깨어나라.’고 외치는 이 5대 개혁안은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닌, 정부 부처 장관상을 휩쓸었던 실무 경험을 살린 치밀한 정책 제안이다. 불법 당선 시 재선거 없이 차점자 승계 및 과징금 환수로 혈세 낭비 방지가 첫 번째이며, 기업 중심의 청년 보금자리 제공과 귀족 노조 이기주의 타파가 두 번째다. 전국 산지에 비상 도로와 인공 수로 의무 구축이 세 번째, 공무원부터 시작하는 전 국민 점진적 마약 테스트가 네 번째, 창조주에 대한 도전임을 알리는 전 국민 인성·영성 교육이 다섯 번째다. 다섯 가지 모두 재벌과 정치를 향해 당당히 손을 뻗는 명료한 처방전이다.
결말부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사람이 품은 알에는 상생의 ‘유정란’과 썩은 냄새를 풍기는 ‘무정란’이 있습니다. 속이고 빼앗는 옹고집 집단은 무정란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은 생명력을 가진 유정란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1962년 기록적인 폭설을 뚫고 나주(羅州, ‘나의 주’)에서 해남까지 찬송을 부르며 걸어갔던 아버지의 마지막 발걸음을 회상하며 반세기가 지나 시공간을 초월해 아버지와 주파수가 맞는 신비한 영적 ‘공명(共鳴)’을 체험한 그는 재산 대신 “신앙을 상속받으라”던 부친의 유언을 비로소 완성해냈다. 서로를 기소·고소하며 ‘소(牛/所)가족’ 현상이 만연한 오늘의 세태를 한탄한 끝에, 웬만하면 우유를 내어주는 ‘젖소’처럼 미소 짓고 양보하는 홍익인간의 사회를 만들자고 당부한다.
시력 상실의 어둠 속에서도 한 자 한 자 희망의 빛을 새겨 넣은 77세 노신사의 호소문. 『제1권 에덴동산의 법 하마알 - 하마알 구씨 글씨 솜씨』는 2030년 대한민국이라는 불사조(피닉스)가 날아오르기 위해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묵직한 보신각 종소리로 남을 것이다. 거목의 그늘에 가려졌던 故 구피득 목사의 숭고한 십자가 발자취가 이제야 아들의 손을 빌려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잊혀진 독립운동가의 부활은 21세기 대한민국이 ‘유정란’으로 다시 깨어날 수 있는 신호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