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더경제【광복절 특별기획 1부】 1941년 『광복』에 남은 오광심의 목소리…여성도 독립전쟁의 주체였다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 1941~1942년 발행된 독립전쟁의 기록
오광심, 「한국 여성 동지들에게 일언을 들림」 통해 여성의 광복군 참여 촉구
기관지 제작·선전·초모까지…기록으로 다시 보는 여성 광복군의 역할
리더경제 윤수연 기자
2026년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한국광복군이 남긴 한 권의 기관지가 다시 주목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인 한국광복군이 독립의 당위성과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기 위해 발행했던 기관지 『광복(光復)』이다.
『광복』에는 당시 독립운동의 목표와 정세 인식뿐 아니라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전선에 뛰어든 여성들의 목소리도 남아 있다. 그 중심에 여성 독립운동가 오광심(吳光心·1910~1976)이 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은 1941년부터 1942년 사이 제작된 자료로, 현재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총 1건 6점이며 2021년 10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광복』은 단순한 소식지가 아니었다. 독립운동의 목적을 알리고 한국광복군의 활동과 항일 의지를 국내외에 전달하기 위한 선전 매체이자, 오늘날에는 당시 독립운동의 사상과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자료다.
■ 1941년 『광복』…독립전쟁은 기록으로도 진행됐다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에서 창설됐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한국광복군의 선전활동에서 기관지 발간은 중요한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시안으로 이동한 뒤 『광복』이 발행되기 시작했고, 한국어본과 중국어본이 제작됐다.
대상도 구분됐다.
한국어본은 국내외 동포 가운데 적 후방에 거주하는 한인을 대상으로 했으며 중국어본은 중국의 행정·군사·언론기관 등을 주요 대상으로 했다.
한국광복군이 무장투쟁만 수행한 조직이 아니라 독립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국제적 지지를 넓히기 위한 정보·선전 활동을 함께 전개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늘날 『광복』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목표로 싸웠는지, 독립을 어떤 언어로 설명했는지, 누구에게 그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지를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광복』에 자신의 목소리를 남긴 오광심
오광심은 한국광복군의 대표적인 여성 대원 가운데 한 명이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아카이브에 따르면 오광심은 1910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1940년 9월 한국광복군 창립식에도 여군복을 입고 참가했다.
이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활동했으며 제3지대에서도 선전활동 등에 참여했다.
특히 오광심은 『광복』에 「한국 여성 동지들에게 일언을 들림」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가 던진 메시지의 핵심은 분명했다.
독립운동과 광복군은 남성만의 영역이 아니며 여성 역시 조국의 독립을 위한 대열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오광심이 이 글을 통해 국내외에서 조국 광복과 민족의 자유를 위해 활동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되물으며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했다고 설명한다.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시대적 환경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은 단순한 참여 독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여성을 독립운동의 보조자가 아니라 독립전쟁을 함께 수행해야 할 주체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 여성 광복군은 기관지를 직접 만들었다
『광복』을 둘러싼 여성들의 역할은 글을 기고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여성 광복군 대원들은 기관지 제작 과정에서 원고 의뢰와 작성, 번역, 발송 등의 업무를 맡았다.
오광심뿐 아니라 지복영도 『광복』에 글을 발표해 여성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촉구했다.
이는 여성 대원들이 독립운동의 메시지를 직접 생산하고 전달하는 과정에 참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들의 활동 영역은 기관지 밖으로도 확장됐다.
여성 광복군은 선전공작과 전략방송, 정보선전, 초모, 적지구 공작, 구호와 정보수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독립전쟁에는 총을 든 전투뿐 아니라 사람을 설득하고 정보를 전달하며 동지를 모으고 국제사회에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또 하나의 전선이 존재했던 셈이다.
■ 오광심, 시안에서 『광복』 간행 통한 선전활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에 남아 있는 오광심의 활동 기록은 더욱 구체적이다.
오광심은 시안에서 약 1년 반 동안 『광복』 간행을 통한 선전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광복군 제3지대를 따라 이동해 활동했으며, 안후이성 푸양에서는 제3지대장 김학규의 참모이자 기밀담당 비서로 활동했다.
광복 후에도 그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상하이의 광복군총사령부 주호판사처에서 교포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교민들의 귀국을 지원했으며, 이후 애국부인회를 조직해 활동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공적을 인정해 1977년 오광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광복 81주년, 기록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광복 81주년을 맞은 오늘 『광복』을 다시 펼쳐보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기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독립운동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몇몇 인물만으로 완성된 역사가 아니었다.
전장에서 싸운 사람과 정보를 수집한 사람, 글을 쓰고 번역한 사람, 기관지를 발송한 사람, 방송으로 독립의 목소리를 전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역사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수많은 여성이 있었다.
오광심이 『광복』에 남긴 기록은 여성 역시 독립운동의 한복판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보존된 『광복』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잊힐 수 있지만, 남겨진 기록은 다시 읽히며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만들어낸다.
광복 81주년.
『광복』에 남아 있는 오광심의 목소리를 다시 읽는 일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다 넓고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리더경제 윤수연 기자
자료출처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여성 한국광복군의 활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및 오광심 아카이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오광심 자료
자료확인시점 : 2026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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