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종 의사 기념관 내부, 광복의 염원을 담은 현판 :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
충남 예산 시골 마을 가는 길 가을이 깊어져 가고 있었다. 추수를 기다리는 누렇게 익은 벼가 정겨운 시골 풍경을 지나 마을 안쪽 산자락 앞에 김한종 의사 기념관은 자리하고 있었다.
풍기 대한광복단 기념공원, 울산 박상진 의사 기념공원에서 이름은 들었지만 아직은 어렴풋한 독립운동가 일우 김한종 선생님을 만나고 왔다. 전시관 아래 주차장은 넓어서 단체 관광객도 맞이할 수 있다.
전시관 올라가는 언덕은 가을 나무와 가을 공기로 상쾌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박물관 건물이 나왔다. 박물관 초입에 어두운 통로가 있고 박물관 건물 입구가 나왔다. 그리고 박물관은 알아서 불을 켜서 둘러보게 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한 분이 관리하다 보니 늘 상주할 수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운영하는 방법이었다. 몇 군데 독립운동가 시설에서 이미 겪은지라 익숙하면서도 조금 가슴이 아픈 방식이다.
적은 예산으로 운영하다 보니 사람을 고용하기 힘들다. 그래서 관련자가 혼자 관리하는 곳이 꽤 많다. 그래서 선택하는 방식이 늘 문을 잠가 놓고 예약하면 열어주거나, 아니면 방문객이 관람할 수 있도록 문은 열어 놓되 불은 방문객이 방문할 때만 켜도록 한다.
전시관은 불을 켜도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이다. 전시관 바닥은 돌로 되어 있어 편안하게 걸을 수 없다. 이것은 건축가가 실제 김한종 의사가 지낸 감옥을 느끼도록 한 설정 중 하나이다.
김한종 의사는 박상진 의사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충청지부장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 국권 회복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그 활동 중 하나가 도고면 면장이었던 친일파 박용하 처단을 직접 계획하신 것이었다. 그리고 경북 칠곡에 살던 장승원 처단에 깊이 관여했다.
도피 중 아는 사람의 밀고로 붙잡혀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셨다. 38살의 안타까운 짧은 생이었다.
좋은 건물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건축가가 건물을 짓게 된 목적과 관련 자료를 이해하여 재해석해서 잘 만들면 그 이야기가 잘 담긴다. 서구 박물관은 전시 동선이 분명하다.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전시 기획자가 의도한 이야기를 다 읽고 나올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동선을 만들어 내는 것이 건축이다.
또한 이야기의 종류에 따라 건축가는 여러 설정을 곳곳에 한다. 밝은 이야기는 창에 햇볕을 가득 담을 수 있다. 그러나 어두운 이야기라면 일부러 관람자도 어둠을 느끼도록 적은 빛이 들어오게 건물을 설정한다.
관람자가 돌아다니며 보는 벽이나 천장 등도 이야기가 부드러운지 거친지에 따라 재질을 택할 수 있다.
그래서 전시를 보기도 전에 건축 자체에서 많은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설정이 잘 된 건물일수록 좋은 건축이라 생각한다. 이런 건축일수록 건축가가 공부를 많이 하고 생각을 깊게 한 건축인 것 같다.
특히 김한종 의사 기념관은 후손이 직접 만들었기에 남다르게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다. 김한종 의사의 손자가 건축가로 직접 설계해서 지은 건물이다. 일부러 후손은 김한종 의사 생가 근처에 땅을 마련하여 생가를 마주보는 곳에 기념관을 지었다.
그리고 기념관 근처에 같이 항일운동을 한 분들을 모시는 사당까지 만들었다. 많은 독립운동이 그러하듯이 혼자 활동한 것이 아니라 같이 한 분들이 있다. 이런 분까지 챙기는 것이 독립운동한 선조의 뜻을 잘 이해한 것으로 생각한다.

광복의 염원을 담은 김한종 의사 생가 현판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
그리고 기념관에서 생가와 사당 가는 길은 아름다운 정원이 꾸며져 있다. 역시 후손이 관리하기에 꽤 넓은 구역에 감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꽃을 심어 놓았다. 기념관 전시를 보고 무거워진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독립운동가 한 분을 알게 된 것도 좋았지만, 마음에 드는 건축물을 본 것도 오랜만이라 좋았다. 50개국 이상을 다니면서 나름 한국 박물관도 이렇게 지었으면 좋겠다고 바랬던 것이 거의 모두 담긴 장소였다. 찾아가기 조금 깊은 곳에 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 전통이 어우러진 공간을 보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장소이다.
대한광복회 군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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